옛 관직 이야기

옛날 관직에 대해 설명합니다.

  • 2025. 4. 15.

    by. ⅲ⋰∵∧≋

    목차

      조선시대 관직을 이해하는 건 마치 500년 전의 조직도를 분석하는 일과 같다. 당시에도 나름의 직무 분장이 존재했고, 정치, 행정, 군사, 외교, 교육, 사법 등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인물들이 존재했다. 오늘날에도 정부 부처, 민간 기업, 법조계, 군대, 언론 등 다양한 직종이 있듯, 조선 역시 그에 상응하는 직책들이 있었다. 이 글에서는 조선시대의 대표 관직들을 현대 직업과 비유해 보며, 과거의 공직 구조가 어떻게 오늘날의 사회 체계로 진화했는지 흥미롭게 살펴본다.

       

      지금과 비교한 옛날 관직

      1. 정승은 국무총리, 판서는 장관

      조선시대 최고의 행정 책임자는 ‘정승’으로 통칭되는 의정부의 고위직 3인방이다. 이 중 영의정은 국가의 최고 행정 총책임자로, 오늘날 대한민국 국무총리와 유사한 위치에 있다. 영의정은 모든 부서의 정책을 최종 조율하고 왕과 함께 국정 방향을 논의하는 역할을 했다. 좌의정, 우의정은 각각 제1, 제2 부총리 역할로 보아도 무방하다.

      반면, 육조의 수장인 ‘판서’는 각 부서의 실무 총괄 책임자였다. 이조판서는 인사와 공무원 임용, 승진을 관장했으니 인사혁신처 장관, 병조판서는 국방을 맡았으니 국방부 장관과 유사하다. 호조판서는 예산과 세금, 국고를 담당해 오늘날 기획재정부 장관에 해당하고, 형조판서는 사법 행정을 맡았으니 법무부 장관이나 대법원장과도 비슷한 위치다.

      이조판서는 ‘관직의 문지기’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으며, 승정원과 긴밀히 협조하여 인사 발표 문서를 왕에게 올리는 중심 축이었다. 한 번 임용된 인사는 쉽게 뒤집히지 않기 때문에, 정파 간 권력 다툼에서 이조를 장악하는 것이 곧 정권을 쥐는 것과 같았다.

      2. 홍문관은 국회입법조사처, 사간원은 감사원 혹은 언론

      홍문관은 단순한 학술기관이 아니었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왕의 철학을 정립하고, 이상 정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브레인 그룹이었다. 현대적으로 보면 국회의 입법조사처 또는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단과 흡사하며, 실제로도 경연에서 나온 논의가 국정 운영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홍문관에서 활동한 인물들은 대체로 문과 장원급제 출신이 많았으며, 이들은 뛰어난 문장력과 학문적 깊이를 바탕으로 국왕과 토론에 참여했다. 예컨대 세종과 함께 활동한 최만리는 왕이 한글 창제를 추진할 때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개진했던 인물로, 왕과 대등하게 토론을 벌인 대표 사례다.

      사간원은 감사원적 기능뿐 아니라 오늘날 언론의 감시 기능과도 유사했다. 사간원은 정승이나 판서, 심지어 왕의 행동에 대해서도 상소를 통해 견제할 수 있었다. 왕이 부당한 인사를 내리거나, 사사로운 감정으로 정치에 개입할 경우 이를 저지하는 역할을 맡았고, 많은 경우 그 상소문은 공공 기록으로 후세에 남겨졌다.

      3. 승정원은 대통령 비서실, 전의감은 청와대 의료진

      승정원은 조선 국정의 ‘허브’였다. 국왕의 명령을 작성하고, 각 부처와 소통하며, 국정 전반의 일정과 서류를 조정했다. 이는 청와대 비서실 혹은 대통령실의 기능과 매우 유사하다. 좌·우승지부터 주서까지 구성된 승정원 조직은 왕의 모든 움직임을 문서화하며 통제된 흐름 속에서 국정을 운영했다.

      또한 국왕이 직접 지시하지 않고는 열람할 수 없는 ‘어람문서’는 승정원이 따로 보관했으며, 왕의 개인적 사안도 이곳을 통해 처리되었다. 따라서 승정원의 기능은 단순한 서기나 전달자를 넘어서, ‘정보 통제 관리자’ 역할도 수행했다.

      전의감은 왕실 건강을 담당한 의료기관으로, 조선 왕조실록에는 의관들이 왕의 상태를 매일 보고한 기록이 남아 있다. 전의감은 궁중 약제 관리, 진료, 예방, 질병 연구 등을 담당했으며, 왕의 신체 건강뿐 아니라 심리 상태까지 세밀히 파악해 대응했다. 대통령 전담 의료팀과 1:1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전문성과 체계성을 갖췄다.

      4. 의금부는 특수검찰, 사역원은 외교부와 통역청

      의금부는 조선시대 특수수사기관으로, 왕족과 고위관료, 반역자 등을 조사하는 특별 수사처였다. 비공개 조사가 원칙이었으며, 고문, 심문, 압수, 체포까지 직접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지금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찰 특수부, 감사원 조정실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의금부는 ‘왕명에 의한 수사’라는 점에서 단순한 사법기관이 아니라 정치적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작동했으며, 때로는 억울한 희생자를 양산하기도 했다. 그래서 의금부 관리들은 철저한 윤리성과 정치적 균형감각을 요구받았다.

      사역원은 조선시대 외국어 전문기관으로, 통번역, 외국어 교육, 외교문서 작성, 외국사절 접대 등을 수행했다. 오늘날 외교부 통상국, 국립외교원, 혹은 UN통번역팀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사역원에서는 여진어, 일본어, 한어(중국어), 몽골어까지 가르쳤고, 관련 시험을 통과해야만 정식 관직자로 임명되었다.

      5. 지방관은 시장 CEO, 수령은 군수·시장·검사·판사 겸임

      조선의 지방 행정 책임자는 수령이었다. 수령은 한 지역의 군정을 통괄하며 행정, 사법, 세무, 국방을 모두 혼자서 처리해야 했다. 이들은 지방의 군수, 시장, 판사, 검사, 경찰서장까지 겸임하는 존재로, 한 지역의 ‘작은 왕’이라 불리기도 했다.

      수령은 중앙에서 임명되었고, 해당 지역 출신은 파견할 수 없다는 법이 있었다. 이는 ‘연고주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였다. 수령이 부임하면 향약을 정비하고, 백성의 안부를 살피며, 범죄를 직접 조사하고 형벌을 내렸다. 또한 토지세, 공납, 군역 징수까지 담당했기 때문에 마치 시장과 세무서장을 동시에 겸임한 셈이다.

      한양의 경우에는 ‘한성부 판윤’이 오늘날의 서울시장과 같은 지위였으며, 지방의 감찰과 관찰은 관찰사가 담당했다. 이는 오늘날의 도지사 또는 감사원 지역감사실과 비슷하다. 이처럼 중앙과 지방의 권력은 수직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수령의 역량에 따라 한 고을의 수준이 결정되었다.